소송공화국이란 불명예 과연 벗을 수 있을까?


[팩트인뉴스=임준하 기자]대법원이 발간한 2012년 사법연감에 의하면 1년 동안 전국 법원에 접수된 소송 건수는 약 629만 건이다. 우리 국민 8명 가운데 1명이 1년에 한 번 송사에 관여한 셈이다. 소송공화국이라는 자랑스럽지 못한 이름이 붙여질 만하다.


흔히들 한국사회를 갈등의 전람회장이라고 한다. 아이양육 문제에서, 입시, 취업, 노후 준비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은 다양하다. 여기에, 세대 간, 계층 간, 학력, 빈부, 지역, 인재와 기업의 중앙 집중 갈등까지 더해지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또 사회적 합의 없는 정책결정이 각종 반목과 불신을 야기 시키고 있다. 이에 <팩트인뉴스>는 대화와 소통이 단절된 우리 사회를 진단해봤다.


대법원 소송건수 629만건‥8명 중 1명 송사


갈등해소보다‥확대·재생산 하는 정치권


지난 9일 법률신문에 따르면 서울고법의 한 부장 판사가 “10여 년 전 고등배석으로 근무할 당시 200여건 이던 미제사건이 지금은 400건에 이른다”고 말했다. 10년 전에 비해 사건이 두 배나 증가해 이를 해결할 시간 또한 지연돼 결국 ‘미제’ 사건에 이르게 된 것이다.


또 민사소송을 제기한 원고들 가운데 절반이상이 패소판결을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당사자 간 합의할 수 있는 사소한 다툼까지도 법정으로 끌고 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반증이다. 가장 큰 이유는 관용이나 배려라는 미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발표된 지표도 대한민국이 갈등 사회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서울 여의도 KT빌딩에서 개최한 ‘제2차 국민대통합 심포지엄’에서 박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사회의 갈등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다”고 밝혔다. 사실상 종교 분쟁을 겪고 있는 터키를 제외하고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박 연구원은 “한국의 사회갈등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은 연간 82조~246조원으로 추산된다”며 “한국의 사회갈등지수가 OECD 평균 수준으로만 개선돼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7~21%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정치·사회적 불안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불확실성을 키우고, 인재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는 갈등


우리 사회에서는 갈등이 장기화되고, 갈등해결은 조정중재 등 원할한 해법 보다 법원판결, 입법 등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이 분쟁은 다양한 방법으로 확대되고 있다.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에 따르면 국내 분쟁은 1990년부터 2008년까지 총 624건의 갈등이 있었고, 이는 연간 평균 32.8건이 발생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 같은 갈등은 개인을 넘어 정치, 사회적 이슈까지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14일 철도파업이 한창이던 서울역 광장에는 철도노조와 민주노총 조합원 그리고 진보 성향 시민단체 회원 1만 여 명이 이곳에서 대규모 시국집회를 열었다. 철도 민영화 문제에서 시작된 집회는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과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같은 이슈까지로 번졌다.


하지만 갈등을 중재해야 할 정치권은 갈등 해소는커녕 오히려 장외투쟁과 같은 방식으로 갈등을 확대·재생산 한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서 대화와 소통을 통해 풀어야 할 문제들을 인기에 영합해 이용한다거나 혹은 소통 없이 밀어붙이는 데 대한 염증이 확산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통에 관심 없는 정부


전문가들은 정부 대응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가령 최근 첨예한 논란을 빚은 철도 민영화 관련 이슈가 그렇다.


특히 철도파업 핵심 이슈였던 철도 민영화 문제는 김대중 정부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철도 관련 담당자들은 노조와 국민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네덜란드 정부의 경우 73년 처음 구상한 남부고속철도(HSL-Zuid)를 89년 경 공식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원시림 보존지구인 후른하트 지역을 통과하는 계획안에 반대하는 의견이 제기됐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91년부터 논의를 거쳐 97년 최종적으로 통과구간 전체(10㎞)를 지하화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논의과정만 6년의 시간이 소요된 데는 사업 계획을 세울 때부터 국민 참여를 의무화한 국민참여제도인 PKB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정책결정비용은 많이 들지만 반발이 적어 정책집행비용은 적게 든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책이 대부분 일부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 수준에서 빠르게 결정되기 때문에 정책결정 비용은 적게 들지만 결정과정에서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해당사자와 상충‥비용 증가


그래서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에 부딪쳐 정책집행비용이 많이 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철도파업, 밀양 송전탑, 세종시 건립까지 대부분의 국책사업들이 결정은 빨리 이뤄지지만 집행과정에서 큰 반발에 부딪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소통이다. 이와 관련해 많은 전문가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천주교 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 시국미사가 있은 직후 박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것은 너무 권위적이었다는 지적이다.


집행 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의 논의 보다 정책 집행 과정에서 비록 늦게 진행되지만 소통과 소통을 통한 합의가 이뤄졌다면 이렇게 많은 갈등과 이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없었을 가능성도 있다.


독일, 정치교육의 핵심은 소통


다시 소통이 필요한 때다. 독일과 같은 선진국들은 학교에서 정치교육을 실시한다. 교육 내용은 갈등을 풀어 합의에 이르는 토론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강의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 식 상호소통의 교육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이견을 두고 토론과 합의의 과정이 계속된다.


처음 이 과정에 참여하면 시종일관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묻기 때문에 곤혹스럽다. 그런데 그 과정 자체가 다양한 갈등상황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교육이며, 이러한 소통훈련은 일상에서의 갈등을 해결하는 힘을 만들어준다. 여기에 정부가 역할모델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좀 더 낮은 자세에서 긴 안목을 가지고 의견이 다른 집단과 대화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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