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열 회장 아들, 자본금 5억 회사로 4조 그룹 장악…‘대기업 세습 판박이’

중견건설사인 호반건설은 지난해 기준 재계 순위 44위로 명실공히 대기업집단이다. 2017년에는 대우건설 인수에 나서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창업주인 김상열 회장의 그룹 내 지배력도 공고하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계열사인 ㈜호반(옛 비오토)을 흡수합병하는 과정에서 최대주주가 교체돼 눈길을 끈다. 김 회장을 제치고 최대주주가 된 이는 다름 아닌 장남 김대헌 부사장. 김 부사장이 보유한 호반건설 지분은 54.7%로 부친인 김 회장 소유 지분(10.5%)의 5배가 넘는다. 계열사 합병 후 장남이 그룹 주식 절반 넘게 보유하게 됐으니, 이번 합병이 2세 승계를 위한 밑작업 아니냐는 지적도 자연스럽다.

대기업의 2세 승계가 마냥 비판 받을 일은 아니지만, 그 과정이 공정했는지는 살펴볼 일이 있다. 공교롭게도 김 부사장이 최대주주가 돼 그룹을 장악하고도 납부한 증여세는 ‘0원’이다. 증여가 아닌 합병에 의해 주식을 취득했기 때문이다. 다만, 김 부사장이 21살 나이로 자본금 5억 회사를 창업하고 그룹 최대주주가 되기까지 과정은 의혹투성이다. ‘꼼수 승계’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아들 회사 내부거래-합병으로 급성장1대주주 등극

중앙일간지 인수하려다 되레 꼼수 승계의혹 역풍

호반건설은 지난해 11월 주주총회를 열고 계열사인 ㈜호반을 흡수합병했다. 호반건설 대 호반의 합병비율은 ‘1대 5.8875012’로 산정됐다. 합병 당시 매출액이 더 많은 호반의 기업 가치가 더 높게 평가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호반의 최대주주였던 김대헌 부사장은 자연스레 호반건설의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아울러 합병 직후에는 호반건설 미래전략실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의 나이 32세, 사내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린 지 5년 만이다.

호반 급성장 배경엔 그룹의 전폭지원

서울신문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호반건설 김상열 회장의 장남인 김대헌 부사장 이름이 그룹 공개 문서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2008년 호반의 감사보고서가 공개되면서다. 호반의 전신인 비오토는 2003년 분양대행업체로 설립됐다. 그러다 2008년 감사보고서가 처음 공개되면서 김 부사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비오토는 회사 이름을 호반비오토(2013년)로 변경했다가, 호반건설주택(2015년)을 거쳐, ㈜호반(2018년)으로 바꿨다. 이 과정에서 계열사인 호반씨엠, 에이치비 자산관리, 스카이 건설, 호반하우징 등을 차례 흡수합병하며 덩치를 불렸다.

2008년 호반의 매출액은 1166억원, 순이익은 169억원이었다. 이후 매년 성장해 9년 만인 2017년 매출액은 1조6000억원, 순이익은 6100억원에 이르렀다. 순이익은 36배, 매출액은 100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이러한 성장세는 호반건설과 합병 당시 높은 기업 가치 평가를 받는 근거가 됐다

 

▲ 호반건설 신사옥


레드오션이라고 할 수 있는 분양 시장에서 호반이 급성장한 과정을 살펴보면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들을 동원해 전폭적으로 지원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실제로 이 회사의 내부거래 비율을 살펴보면 2008년 38.6%에 그쳤으나 이듬해 71.7%로 치솟더니 2010년에는 99.4%, 2011년 88.3%, 2012년 96.3%를 기록했다. 2013년에는 호반과 내부거래가 많던 에이치비자산관리와 호반씨엠을 합병해 내부거래 비중을 21.8%까지 급격히 줄였다. 사회적으로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 문제가 부각되던 시기와도 일치한다.

계열사와 합병으로 덩치 불리기를 끝낸 2017년에는 내부거래 비중이 30%대를 유지하면서도 당기순이익이 2043억원을 기록하며 모기업인 호반건설의 당기순이익을 한참 넘어섰다. 공교롭게도 매출 최대치를 찍은 다음해인 지난해 호반건설에 흡수합병됐고, 호반 최대주주였던 김 부사장은 자연스레 호반건설의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2008년 시작된 그룹 지배권 승계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 김대헌 호반건설 부사장(오른쪽)

 

공격적 인수합병…꼼수 승계 일환일까

호반건설은 중견건설사 중에서도 적극적인 인수합병으로 유명하다. 호반건설보다 덩치가 큰 대우건설과 금호산업 인수전에 뛰어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장에서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받기 위한 전력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계열사 호반과의 합병과정에서 ‘꼼수 승계’ 논란이 불거지면서 기업 행태의 치부를 드러낸 모양새다. 인수합병으로 구매한 회사를 장남의 계열사에 붙여 상속‧증여세를 회피한 채 그룹 지배권을 승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역설적이게도 호반건설의 꼼수 승계 의혹이 불거진 것은 중앙일간지인 서울신문의 주식을 매입해 3대 주주로 등극하면서 부터다. 서울신문은 호반건설의 이러한 행보를 “언론 사유화로 규정짓고 호반건설의 도덕성과 기업 행태를 조목조목 분석하겠다”며 ‘꼼수 승계’ 의혹을 제기했다.

서울신문은 계열사의 몸집을 불려 인수합병한 과정 자체도 문제지만, 과연 합병 비율이 적정하게 산정됐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외부평가기관의 적정성 평가를 받아야 하는 상장사간 합병과 달리, 비상장사간 합병은 통상 상장 당사자가 회계법인에 의뢰해 이뤄지는데, 합병 비율 산정에 호반건설의 의견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실제로 호반건설과 호반의 합병비율을 1대4.5209109로 발표했다가, 이후 수정 공시를 통해 1대 5.8875012로 최종 결정됐다. 이 역시 합병 후 김 부사장의 지분율을 높이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중앙 언론 진출하려다 역풍 맞아

호반건설은 제기된 의혹에 대해 “내부 거래가 많았던 것은 당시‧시행 등 건설 사업 전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라면서 “기업공개를 앞두고 비슷한 업종끼리 합병해야 시너지가 날 수 있다는 회계법인 조언에 따라 합병한 것이다”고 말했다.

합병 비율 산정에 대해서는 “비율 산정은 회계법인에서 진행한 것이라 우리가 알 수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언론사가 주요 주주에 대해 거세게 비판하는 이례적인 상황에 호반건설은 당혹해 하는 모습이다. 호반건설 측은 “이번 서울신문 지분 매입은 중장기적 투자 차원”이라며 “현재로선 추가 지분 매입 등 정해진 계획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중견건설사의 언론사 인수는 드물지 않다. 중흥건설이 최근 헤럴드를 인수한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건설사들이 중앙 언론 인수에 열을 올리는 것은 그만한 이득이 따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호반건설이 당장 중앙 언론에 진출하기는 어렵게 됐다. 마무리됐다고 생각한 2세 승계에 꼼수 의혹이 불거진 데다가, 서울신문 구성원들이 호반건설의 치부를 찾는데 혈안이 됐기 때문이다. 중앙일간지를 인수하려다 혹을 붙인 격이다.

 

(사진제공=뉴시스, 호반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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