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 받고 대금은 중개업체 채무 변제로…갑질 전횡


 

한화그룹 계열사로 호텔과 리조트, 외식문화 사업 등을 펼치고 있는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이하 한화호텔) 임직원 및 협력사 관계자 등 3명이 검찰에 넘겨졌다. 이들은 중소 육류도매업체들로부터 물건을 납품 받고도 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이를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당초 유통업체들로부터 사기혐의로 고소당한 한화호텔과 중개업체는 서로가 피해자임을 주장하며 사태는 상호 고발전 양상을 보이기도 했는데, 경찰이 파악한 실상은 이와 달랐다.

늘어난 채무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 중개업체 대표 A씨와 부실채권을 처리하고 싶었던 한화호텔이 상계처리할 목적으로 처음부터 짜고서 거액의 물품을 납품받았다는 것이 경찰의 결론이다. 그 결과 애꿎은 중소 유통업체 3곳이 피해를 떠안은 셈이다.

대기업과 중개업체, 말단의 유통업체간 얽히고설킨 고소전의 내막을 팩트인뉴스에서 들여다봤다.

 

돼지고기 923톤 받고 대금은 ‘모르쇠’…“피해 협력사 망하라는 것”
서로 피해자라더니…중개업체-한화, 채무 변제 목적 납품 공모했나

 

사건의 발단은 지난 1월 한 중개업체를 통해 한화호텔에 112억원 상당의 물품을 납품한 중소 육류도매업체들이 납품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하면서부터다. 알고 보니 이 중개업체는 한화호텔에 150억원가량의 채무가 있었는데, 한화호텔이 이를 납품 대금으로 상계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중개업체가 대금을 못 받으니 납품한 유통업체도 물건만 고스란히 떼이게 됐다.  


물품 받고 채무 변제…말단 유통사 어리둥절

중개업체에 납품하고 대금을 받지 못한 업체는 총 4곳. 중소기업투데이의 보도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문제의 중개업체로부터 한화호텔의 식자재 유통사업을 맡고 있는 한화FC(Food Culture) 사업부 매출 확대를 위해 약 100억원 규모의 육류를 국내에서 구입하려 한다는 설명을 듣고 거래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중개업체 대표 A씨가 한화호텔 담당 구매팀 직원과의 통화 내용을 스피커폰으로 들려주며 거래에 신뢰감을 줬다고 피해 업체들은 설명했다.

지난 1월 11일 112억원의 돼지고기 등 물품이 일괄적으로 납품됐다. 하지만 대금 지급을 약속한 1월 14일이 되어도 지급은 이뤄지지 않았다. A씨와의 연락도 두절됐다. 유통업체들이 한화호텔 측에 확인한 결과, 담당 구매팀 직원은 직위해제됐고, 대금은 중개업체의 채무와 상계처리된 상태였다. 물품이 납품되고 불과 사흘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화호텔은 피해 업체들과의 직접적인 거래관계가 없어 손실을 변제할 의무가 없다면서도, 이들 중 거래 규모가 가장 큰 한 곳에만 대금(50억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나머지 3곳은 돈을 받지 못 했다. 피해 금액은 61억원. 결국 나머지 업체들은 한화호텔임직원 2명과 중개업체 대표 A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으로 지난 2월 고발했다.

한화호텔-중개업체 “나도 피해자”

사기혐의로 고발된 A씨와 한화호텔드리조트는 서로가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A씨는 미지급채권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한화호텔이 이번 거래에서 대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물품을 받고 100억원이 넘는 돈을 주지 않는 것은 망하란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화호텔도 억울함으로 토로했다. 한화호텔의 관계자는 중소기업투데이와의 취재에서 “거래과정에서 회사가 채무상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등 실수가 있었지만, 중개업체 대표가 1월 중순경 회사로 찾아와서 먼저 ‘자력변제 불가’를 선언했다”며 “회사가 손실을 줄이기 위해 입고된 물건으로 채무를 상계처리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피해업체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회사는 피해업체들과는 직접적인 거래관계가 없다”며 “피해업체의 손실을 변제할 문제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한화호텔은 A씨의 거짓 주장으로 유무형의 피해를 당했다며 지난 3월 A씨를 사기죄로 고소했다.

하지만 피해업체들은 이 사건의 중심에 한화호텔이 있다고 보고 있다. 100억원이 넘는 물품대금을 갑작스레 상계처리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일뿐더러, 협력사와의 채무가 그 정도 규모로 늘어나도록 방치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피해업체들은 “대기업인 한화가 채무 상황이 100억원대 이상으로 늘어났다는 사실을 수개월 동안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업계 현실상 담당임원 재가도 없이 일개 팀장 선에서 협력업체에 막대한 금액의 물건을 밀어주거나, 100억원대 구매를 지시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한화호텔이 납품업체에 피해가 돌아갈 것을 알고도 중개업체를 도와 납품을 유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호텔, 사기 공모 혐의로 검찰 송치…공든 이미지 와르르

결국 지난달 23일 한화호텔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경찰은 한화호텔FC 사업부가 있는 서울 동대문 신설동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중개업체와의 거래내역 등 관련 자료 중점적으로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13일 A씨를 사기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기소했다. A씨는 대금을 지급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으면서 중소 유통업체 3곳에서 물품을 납품받아 한화호텔 측에 전달하고도 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다. 또 해당 거래를 담당한 한화호텔의 차장급 직원 B씨와 이사급 임원 C씨 등 2명도 사기를 공모한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B씨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도주 우려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경찰은 A씨가 벌인 범행을 한화호텔의 B씨가 상환 날짜를 연기해 주는 등 과정을 도왔고, 상급자인 C씨가 이에 대한 보고를 받고도 묵인하는 등 공모 관계에 있는 것으로 봤다.

그간 혐의를 부인해 온 한화호텔 입장에서는 뼈아픈 상황이다. 재판 과정에서 협력사들과의 진실공방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A씨와 피해업체들은 한화호텔이 거래량을 부풀리기 위해 관계사들과 물품을 허위로 사고파는 자전거래를 해왔고, 이 과정에서 일부 임직원들은 협력업체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접대와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한 상태다. 한화호텔 측은 관련 의혹에 대해 부인했지만, 시시비비는 재판정에서 가리게 됐다.

 


한화호텔은 모든 임직원이 한화봉사단에 소속돼 ‘밝은 세상 만들기’ 기금 모금에 동참하는 등 그간 사회공헌에 힘써왔다. 최근 발생한 강원도 산불에서도 피해복구 지원에 나선 자원봉사자들에게 객실 100여개를 무상 제공해 훈훈함을 더한 바 있다.

하지만 이제 중소업체에 거액의 채무를 떠넘기려다 결국 기소되면서 브랜드 이미지 하락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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